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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진인, 한재일 목사

내 고교동기인 그는,
경제학도로서 또 같은 길에 들었
다.
짙은 피부에 씩 피어나는 웃음,
늘 조심스런 언변.

진실한 사람 한재일은,
전라 무주라는 벽촌 출신의
소박하기는 야윈 일소 같고
점잖기는 외람되게도
부처님 상.

80년대 대학시절을 아프게 겪은
그저 너ㆍ나와 다를 바 없을...
고뇌와 방황은 좀 더 솔직했고
마음과 영혼은 보다 투명했나!

교정,

14동에서 인문대에 이르는 어귀.
바스라진 블럭과 깨진 병조각 옆에
한참동안,
학생들이 이리저리 피한 뒤에도
퍽 오랜동안,
최루악취를
라일락향이 재울 때까지
번민에 싸여 아니 시대에 갇혀

온 교정을 서성이던 청년.

교내 도로 따라

상흔의 파편들을 되밟으며,
함성이 수차레 이산 저산을 치고
이내 먼지되어 잦아들었을 때조차
걸음을 멈추지 못해,

생각을 정리하지 못해
전철역에 닿는 언덕길을
내처 걷고,
아 이건 힘들다 힘들다 하던 그.

회색인으로서는

견디기 어려웠던 시국,
실은 회색인이어야 품어낸 시절,
혼란스런 젊음의 어둑한 고뇌는
이제 길고 먼 화두가 되었으니...

신앙에 귀의하는 것은,

어쩌면 그야말로 구원.
그 시절,

죽음으로 삶에 맞선
많은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맹렬히 찾은 돌파구의 한 켠,
빛줄기는 보일락 말락,
차라리 활로였을 것이다.
어떤 소명 이전에, 다행스런 숨터.
이마저 없었다면 어쨌을까

아, 아찔한...

군에 다녀오고,
대학원 학문에도 심취하고,
연구소와 기업에도 몸 담아보며,
연애와 결혼... 어느덧 책임의 성인.
아직 빛에 이르는 길은 멀고,

부조리는 너무도 위악스러운가...
번뇌의 실타래는 꼬여만 가고,
양심은,

양심을 엮어내는 이성은,
자아를 꾸짖고...

낯선 이민사회에서

생활인으로 살겠다는 생각도 했고,
그저 쉽게 살자는 마음이었으나,
운명처럼,

십수년 풀지 못한,
생의 소명을 찾기 위해,
고통스런 번민을 헤쳐보기로 했다.
그간 수차레 읽고 묵상한 성경,
가르침과 계율,

그것에 맞서보기로 한다.
생을 걸고...
신에게의 두번째 귀의,

신학에의 투신.

신학은 누구에게는 계시,
일부에게는 어쩌면 해석.
이성적 설득과 감성적 수용.
사오년의 정진과 봉사를 통해,
아직 멀었다,

과연 이것일까 하는 와중에
어느새 차오른 믿음으로 다져진 자신,
회의와 비판은 옳음을 증명하는 간증.
한걸음씩 왔을 뿐인데,
신을 향했던 뭇 세월이 허락한 치유.
은혜에 닿다.

이제,
신앙 그 자체, 또 봉사와 구원,
인간에 대한 신뢰
그리고 소망.
'바른 믿음과 실천에서' 라는 생각.
스스로 길을 가야 할 때,
너무 늦지 않게,

기꺼이 갈 수 있게 된 그는,
이제 목사로서,

명철한 사고, 환희에 찬 믿음으로,
정겨운
신도와 이웃과 지인,
나아가
동포인류에 대해,
본인의 소명을 찾은 듯하다.

여름 햇살 아래
짙은 녹음,
창공으로 박차 오른 매인가...
더이상 길 해매는
미조가 아니어서 기쁜,
더없이 기꺼운 삼십년 지기의 눈엔,
그가 매우 힘차 보였다.
정수리까지 덮어 가는
흰머리 탓에,
더욱 짙어 보이는 안색의 진인.
그의 소박한 미소는 여전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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